Foolish consistency

“어리석은 일관성은 소인배들의 도깨비다. 작은 정치가들과 철학자들, 성직자들이 숭배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위대한 영혼에게 일관성은 애초에 상관없는 문제다. 그런 것에 신경 쓰느니 차라리 벽에 비친 자기 그림자나 걱정하는 편이 낫다. 오늘은 오늘의 생각을 단호한 말로 말하라. 그리고 내일은, 오늘 한 말과 모두 모순되더라도, 내일의 생각을 다시 단호한 말로 말하라.

‘그러면 틀림없이 오해를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오해받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인가? 피타고라스도 오해받았고, 소크라테스도, 예수도, 루터도, 코페르니쿠스도, 갈릴레이도, 뉴턴도 그랬다. 육신을 입고 살았던 모든 순수하고 지혜로운 정신은 다 오해를 받았다. 위대하다는 것은 곧 오해받는다는 뜻이다.”

– 랠프 월도 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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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같은 고통은 성장에 필수다.

염소 농사

“내년에는 직종을 바꿀까 생각중이다. 이 일은 이제 기술보다도 다 큰 어른들이 난장판 만드는 걸 끊임없이 막는 일이 됐다. 염소 농장 수익성은 좀 어떤가 모르겠네.”

“나 염소 키워 봤어. 스스로 잘 해야 마땅할 것들이 난장판 치는 걸 막는 게 싫다면 염소는 권장하지 않아.”

– “맞아. IT도 그냥 염소 농사야. 인간 염소들은 티켓이라도 올릴 수 있지. 물론 안 올리지만 그래도 올릴 가능성은 있잖아.”

케이레츠(系列)

한국의 재벌 체계는 일본 재벌 체계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

미쓰비시(三菱), 스미토모(住友), 미쓰이(三井) 같은 일본 케이레츠를 이해하려면 용어부터 짚어야 한다. 일본에서 재벌은 자이바츠(財閥), 계열은 케이레츠(系列)다. 둘 다 한국어 ‘재벌’, ‘계열’과 같은 한자를 쓰지만, 실제 의미와 작동 방식은 꽤 다르다.

스미토모는 에도 시대부터 이어진 전통 자이바츠였다. 구리 광산을 기반으로 금융·상업·제조로 확장했고, 전전(戰前)까지는 스미토모 가문이 소유와 지배를 장악했다. 이 시기의 구조는 한국 재벌과 매우 흡사했다. 가문 중심, 내부 규율, 계열 간 강한 결속이 특징이었다.

이 구조가 무너진 건 전후 미군정 시기다. 일본의 자이바츠는 전쟁 책임과 독점 문제로 강제 해체됐고, 스미토모 가문은 지배권을 상실했다. 여기서 한국 재벌과 길이 갈라진다. 한국의 재벌 체제는 한국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형성됐지만, 일본은 “총수 없는 기업 집단”으로 재편된다.

그 결과물이 스미토모 케이레츠(住友系列)다. 케이레츠는 지주회사나 오너 가문이 없다. 스미토모 상사, 스미토모 화학, 스미토모 전기공업, NEC 같은 회사들이 스미토모 미쓰이 은행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묶여 있을 뿐이다. 연결 고리는 소량의 교차지분과 정기적인 사장단 모임 정도다. 한국으로 치면 같은 재벌 집안에서 지분 정리하고 독립해 나간 방계 간의 관계에 가깝다.

그렇다면 “같은 케이레츠라서 가능한 일”은 무엇일까.

첫째, 금융 안정성이다. 중심 은행과의 관계 덕분에 위기 시 급격한 자금 경색을 피하기 쉽다. 다만 한국 재벌처럼 무제한 지원은 아니다.

둘째, 정보 공유와 신뢰다. 적대적 M&A 방어, 장기 거래 관계, 인사 교류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셋째, 장기 전략 협력이다. 단기 수익보다 산업 안정과 기술 축적을 중시하는 공감대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안 해주는 것”도 분명하다.

계열사가 흔들린다고 그룹 전체가 나서서 구제하지 않는다. NEC가 장기 침체에 빠졌을 때도 스미토모 케이레츠는 총력 지원에 나서지 않았다. 각 회사는 독립적으로 구조조정하고 외부 자본을 받아들였다. 한국 재벌에서 흔한 내부 거래 확대나 총수 결단과는 결이 다르다.

이 느슨함은 위기 시 전체의 생존력을 높이기도 하지만, 결정이 느리고 책임 소재가 흐려지는 단점도 있다.

탈퇴도 마찬가지다. 케이레츠에는 공식적인 가입·탈퇴 절차가 없다. NEC는 지금도 역사적으로는 스미토모 계열로 분류되지만, 2000년대 이후 실질적 케이레츠 색채는 거의 사라졌다. 이름은 남고 연대는 희미해졌다. 한국 재벌에서 계열 분리는 곧 지배권 문제로 이어지지만, 일본에서는 자연스러운 거리 조정에 가깝다.

한국 재벌과의 가장 큰 차이가 소유구도인 만큼, 한국 재벌의 모든 힘이 한 명에게 집중됐을 때의 막강한 권력과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승계와 상속 문제도 일본 케이레츠는 한국 재벌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하다. 일본에서 한 케이레츠의 전력이 하나의 목표에 집중되는 경우는 드물다. 다만 외부에서 적대적 공격이 들어올 때는 케이레츠 전체가 묵시적으로 한 편이 된다.

한국에서는 금산분리로 재벌의 은행 소유를 막아 국민의 예금이 재벌의 사업 자금으로 전용되는 것을 제한해 왔다. 반면 일본은 자이바츠 시절부터 은행이 중심에 있었다. 대신 은행 운영 자체를 엄격히 관리해 예금 남용을 제도적으로 억제했다.

케이레츠 전체를 묶는 지주회사는 없지만 케이레츠 안에 기업들은 1997년 이후 순수지주회사 설립이 허용돼서 스미토모 화학, 미쓰비시 UFJ 파이낸셜 그룹 등은 지주회사 구조로 되어 있다. 또한 2015년 기업지배구조 코드로 케이레츠 간 소량의 교차지분도 많이 정리해 처분하는 트렌드다. 점점 더 연결 고리가 느슨해져 사장단 친목회에 가까워지고 있다.

한국 재벌 계열사 간의 교차소유는 1인이 소량 지분으로 전체를 지배하기 위해 힘을 한 곳으로 모으는 구조다. 차트를 보면 명확해진다. 반면 교차소유가 지금보다 심했을 때조차도, 케이레츠의 교차소유는 상호 연대를 위한 성격이 강해 구조의 꼭지점이 없다.

AI의 공부 비결

AI 모델을 훈련하면, 데이타를 주면 처음엔 외운다. 문제-답, 문제-답, 이렇게 외우기 때문에 외운 문제 외의 응용문제를 주면 전혀 맞추지 못한다. 근데 이 훈련을 반복하면 어느 순간 갑자기 정확한 답을 내놓기 시작한다. 서서히 맞추는 비율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 0%에서 거의 90% 이상으로. 반복 학습 과정에서 신경망 내부 표현이 구조화되면서 일반화 능력이 생긴다. 배운다는 게 무엇인가, 어떻게 이뤄지는 것인가 궁금해지 게 만든다.

덧셈을 어떻게 배우는가 연구해보니, 더하기 문제를 주면 문제와 답을 외우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에 답을 맞추기 시작하는데, 내부 작동 원리를 보니 cos(x)cos(y)−sin(x)sin(y)=cos(x+y) 라는 방식으로 두 수를 더하는 방식을 개발해서 더하고 있었다. 하나와 둘이 합쳐져서 셋이 된다기 보다 웨이브 패턴을 그려 답일 경우에만 나타나는 패턴을 인식한다. 산수를 배우기 위해 기하학을 사용했다. 입력을 고차원 공간에서 주기적 함수처럼 임베딩하고 그 패턴을 활용했다.

뛰는 법을 배우기 위해 랜덤한 동작 수만가지를 동시에 시뮬레이션해서 그 중 가장 앞으로 잘 나가는 놈들에 보상을 주면 육상선수처럼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고 기괴한 모습으로 앞으로 굴러가는 로봇 모델들을 볼 수 있지만, 어쨌건 앞으로 빨리 가는 건 성공하는 것과 비슷하다.

눈먼 돈

2000년대 닷컴 거품이 꺼졌지만, 시장에 풀린 유동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른 거대 자본은 다시 IT 산업을 첫 번째 사냥감으로 지목했다.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들이 석유회사들이었지만 순식간에 IT 기업들로 교체됐다. 현존 모델이든 새로운 아이디어든, 설명회만 그럴듯하면 요청한 자금의 몇 배 규모 자금이 투자되는 일이 잦았다. 아무것도 없는 팀이 수천만 달러를 받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실패의 교훈은 ‘조심하자’가 아니라 ‘이번엔 더 크게 가자’로 해석됐다.

IT 업계에서 가능성을 찾은 자본은 세상 모든 산업에 IT의 렌즈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업에 IT라는 ‘혁신’을 입히고 공유경제, 구독모델로 뒤바꾸기 시작했고 추가 가치가 창출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실 사모펀드들이 하던 구조조정/차입/해체 일을 더 크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에서 승차공유, 숙박공유는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도시를 재편한다”는 이야기로 포장됐고, 경쟁이 붙자 손익은 무시된 채 보조금 전쟁이 벌어졌다. 중국에선 그 강도가 훨씬 셌다. Didi를 중심으로 한 공유 택시, Meituan, Ele.me 같은 음식 배달, 자전거 공유까지 필요 이상으로 큰 돈이 한꺼번에 몰렸다. 결과는 승자도, 패자도 모두 피를 보는 구조였다. 시장은 커졌지만, 남은 것은 출혈과 구조조정이었다.

규제 철폐, 무분별 투자로 야기된 경제위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양적 완화는 다시 이 자본의 규모를 매번 더 키웠다. 문제는 큰 자본이 마련됐다고 좋은 투자처가 갑자기 생겨나지는 않으니, 아마존과 쿠팡이 했던 것처럼 수익구조가 없는 사업에 거대 자본을 투자해 규모부터 형성한 뒤 수익모델을 찾는 엉뚱한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거였다. 투자 회사들끼리 경쟁이 붙어 절대 수익이 날 수 없는 작은 규모 시장에 그 몇 배 되는 돈이 투자 되곤 했다.

정책이 기름을 부은 사례도 있다. 각국의 보조금과 목표치에 힘입어 중국 태양광 산업에도 한때 과잉 투자가 발생했다. 설비는 늘었고 패널 가격은 폭락했다. 기술은 남았지만 수많은 기업이 사라졌다. ‘옳은 방향’이라는 확신이 자본을 과속하게 만든 전형적 사례다.

비슷한 경로를 밟은 업종은 더 있다. SPAC 열풍으로 실체가 빈약한 기업들이 상장했고, 전기차와 배터리는 미래 서사 하나로 밸류에이션이 먼저 달렸다. 암호화폐와 채굴 산업은 에너지, 부동산까지 끌어들였고, 게임, 메타버스, NFT도 같은 자본의 파동 위에 올랐다. 어떤 곳은 일시적 성공을, 어떤 곳은 급락을 겪었다. 공통점은 “돈이 먼저, 검증은 나중”이었다는 점이다.

손정의의 비전펀드 등으로 대표되는 이 눈먼 묻지마 자본은 한 업종에서 빠져나와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다음 업종, 부동산으로, 주식으로, 원자재로 이동했다. 지금은 AI 업계에 집중된 상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돈의 이동이 거품을 만들고, 그 잔열이 생활 물가로 전이됐다. 오늘날의 인플레이션은 단순한 통화 문제만이 아니라, 지난 20여 년간 ‘판을 키우며 이동한 자본’이 남긴 흔적이기도 하다.

중국 자전거 공유 서비스

중국 자전거 공유 서비스들의 경쟁이 심해지다가 붕괴된 2018년 폐기되던 자전거들.

당시는 인도에 사람들이 걸어다닐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공유자전거가 넘쳤었다. 2016부터 2018까지 경쟁이 너무 심해져 베이징이 필요한 자전거 수라고 분석된 50만대의 두 배인 100만대가 풀렸었고, 풀리자마자 바로 망가지고 분실돼서 회사들은 투자를 받아 계속 더 풀기만 했다. 그냥 바로 쓰레기가 됐다.

지금은 균형을 찾아서 대기업 + 지자체가 관리하는 공공인프라처럼 운영되고 있다. 도시별 총량이 정해져있고 주차 구역이 정해져 있으며 데이터 기반 배치와 회수로 사용율을 높히고 있다. 전기 자전거와 스쿠터로 확장한 회사들도 많다.

엄살

자기가 무슨 성희롱 누명쓸지 몰라서 여성은 채용하기 힘들다는 남성들이나,

한국 밤거리 다니기 무섭다는 여성들이나 엄살이 거기서 거기인 듯.

한국이 그렇게 PC한 나라는 아닌 반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중 하나이기는 해서.

동지 간의 싸움

조국혁신당 지지자들 입장에서 촛불행동의 언행은 큰 상처가 된다. 동지에게서 받는 공격이라 다른 경우보다 더 억울하고 더 분하다.

근데 그에 대한 대응은 반대로 다른 경우에 비해 덜 해야 한다. 동지이기 때문이다.

동지끼리도 실수할 수 있다. 홧김에 “이에는 이, 눈에는 눈” 혹은 “어? 그럼 이제 앞으로 우리 다시는 안보는거다?” 이렇게 대응하기 쉽지만 동지가 동지에게 그런 말을 하면 안되는 것처럼 동지는 동지의 모든 실수 하나 하나에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며 신경 싸움하거나 그 존재 가치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일본 인터넷

80년대 일본의 통신 규제는 기술 발전을 시작부터 비틀어 놓았다. 당시 통신 모뎀은 사실상 NTT만 사용할 수 있었고, 그 결과 피시 통신이나 인터넷 같은 민간 기반 네트워크 사업은 제도권에서 출발조차 할 수 없었다. 이 틈을 깨뜨린 사건이 무라이 준 교수가 미국에서 모뎀을 들여와 게이오대, 도쿄대, 도쿄공업대를 연결한 JUNET이다. 명백한 불법이었다. 하지만 그 ‘불법’이 일본 인터넷의 실질적 출발점이 됐다.

정부와 대기업의 기술 선택도 문제였다. 한국이 공인인증서, 액티브엑스, HWP 종속을 겪었고, 정부가 와이브로를 밀었지만 시장은 LTE를 선택했던 것처럼, 일본 역시 TCP/IP 대신 OSI(Open Systems Interconnection)를 고집했다. 국제 표준 경쟁에서 이미 기울어진 싸움이었는데도 관료적 이상형에 집착했다. 그 결과 일본의 네트워크는 초반부터 세계 흐름과 어긋난, 이른바 갈라파고스 구조로 굳어졌다.

아이러니는 사용자 경험에서는 오히려 일본이 너무 앞서 있었다는 점이다. 프랑스가 미니텔 대성공의 후유증으로 인터넷 전환이 늦어졌듯, 일본은 아이폰이 나오기 10년도 전에 NTT 도코모의 i-mode로 이메일, 예매, 결제, 뉴스, 만화까지 가능했다. 전화기는 이미 ‘스마트폰처럼’ 쓰이고 있었다. 그래서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이 체감되지 않았다. 편리함이 전환을 늦춘 셈이다.

일부 기기는 아이폰 이전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획기적인 상품들도 많았는데 일본 회사들 특유의 내수시장 집중으로 세계 무대에 선보이지 못했고 모바일 세상은 애플이 가져갔다.

90년대까지의 서비스 구조도 영향을 줬다. NIFTY-Serve, PC-VAN 같은 피시 통신은 미국의 AOL이나 한국의 천리안, 하이텔처럼 중앙집중형 BBS, 즉 인트라넷에 가까웠는데 훨씬 대중화 됐고 성공적이었다. 개방형 웹으로 넘어갈 유인이 약했고, 서비스 사업자들도 폐쇄 생태계 유지에 더 익숙했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잘 돌아가는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에 변화가 느렸다.

세계 3위권의 경제 규모, 압도적인 대중문화 영향력, 한때 세계 최고였던 전자, 통신 기술력을 감안하면, 인터넷 시대 이후 글로벌 무대에서 두각을 보이는 일본 기업은 놀라울 만큼 적다. 검색, 소셜, 모바일 플랫폼, 클라우드, 웹 서비스 어느 분야를 봐도 일본은 ‘초기 강자’도, ‘후발 역전’도 만들지 못했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규제, 표준 선택, 과도하게 성공한 내부 생태계가 세계와의 접속을 늦췄기 때문이다.

AI 체스 게임

체스는 어느 정도 완성했다.

특히 neural network로 훈련된 모델 파일로 점수를 계산하기 때문에 인간 그랜드마스터보다는 강할 거고, 나온 수를 다시 Gemini에게 보내 분석을 받아온다.

난 체스를 할 줄 몰라서 어떻게 해야 이걸로 배울 수 있을지 고민하며 만들어보는 중이다.